6월 4, 2026
밀가루 담합에 역대급 과징금, 공정한 시장은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는가

밀가루 담합에 역대급 과징금, 공정한 시장은 왜 이렇게 늦게 돌아오는가

오래된 불신이 다시 고개를 든 이유

겪어보니 물가는 숫자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내 지갑이 얇아지는 속도, 마트 진열대에서 망설이는 시간, 그리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며 장바구니를 채우는 마음까지 다 흔든다. 그래서 밀가루 담합 사건은 단순한 기업 비리가 아니라, 생활비를 정면으로 건드린 사건으로 읽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7개 제분사에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까지 검토·부과한 배경에는 그만큼 시장 왜곡이 깊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이번 사건이 더 뼈아픈 이유는 대상 기업들이 한두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까지 국내 B2B 밀가루 시장의 87.7%를 차지한 과점사업자들이었다. 지나고 보니 이런 구조에서는 한 번의 합의가 곧 시장 전체의 호흡이 된다. 소비자는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급망 상단에서 정해진 가격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밀가루 담합이 시장을 흔드는 방식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담합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이어졌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을 대상으로 한 전거래처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 합계 24차례에 달했다. 말 그대로 가격만 맞춘 게 아니라 물량까지 조절한 셈이다. 이런 방식은 시장의 경쟁 신호를 흐리게 만든다. 경쟁이 살아 있으면 가격은 원가와 수요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데, 담합이 끼어들면 그 흐름이 사람 손으로 비틀린다.

특히 이들 업체는 원맥을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는 점을 이용해, 원가가 오를 때는 인상분을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고 원가가 내릴 때는 하락분을 늦게 반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하면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올랐다. 내가 보기엔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한 인상률이 아니다. 오를 때는 재빨리, 내릴 때는 느리게 움직인 방식 자체가 전형적인 시장 교란의 신호다.

과징금이 역대 최대가 된 이유

이번 과징금은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공정위는 관련매출액을 약 5조6900억원으로 산정했고,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하다고 봤다. 이미 2006년에도 이들 또는 그 전신 격 회사들은 밀가루 담합으로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다시 같은 방식의 담합이 반복됐다. 한 번의 경고로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제재는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더 불편한 대목은 정부의 물가 안정 사업기간에도 담합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2월까지 471억원의 지원을 받는 동안에도 담합은 멈추지 않았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공적 자원이 투입된 상황에서조차 가격 왜곡이 계속됐다면, 이는 단순한 기업 간 담합을 넘어 민생 안정 장치를 무력화한 행위로 볼 수 있다.

항목 내용
담합 기간 2019년 11월 ~ 2025년 10월
담합 횟수 총 24차례
시장점유율 87.7% (2024년 매출액 기준)
과징금 총 6710억4500만원
관련매출액 약 5조6900억원

가격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사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가격이 오른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가격이 왜 올랐는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공정위는 대표자급 회합과 실무자급 회합이 총 55회에 걸쳐 이뤄졌다고 밝혔다. 큰 틀의 합의를 먼저 만들고, 세부 실행은 실무선에서 다듬는 구조였다. 아주 조직적이었다. 우연히 비슷해진 가격이 아니라, 조정된 가격이었다는 뜻이다.

공정위가 이번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부과한 것도 그래서 의미가 크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라는 취지다. 2006년 밀가루 담합 당시에도 비슷한 명령이 있었고, 이후 약 5%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시장 질서를 회복시키는 장치는 느리지만, 한 번 작동하면 분명한 메시지를 남긴다. “이 가격은 시장의 결과가 아니라 조작의 결과였다”는 선언이다.

📊 담합 전후 가격 변화

2019년 12월 대비 2022년 9월
제분사별 판매가격 ■■■■■■■■■■■■■■■■ 38%
제분사별 판매가격 ■■■■■■■■■■■■■■■■■■■■■■■■■■■■ 74%

“민생과 밀접한 품목에는 실효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적극적으로 경쟁을 회복하는 조치로서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시켰다.”

이 사건이 남긴 다음 질문

이번 조치가 끝이 아니다. 공정위는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도록 하는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도 부과했다. 또 지난 1월에는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한 고발 조치도 마쳤다. 검찰도 별도로 6개 법인과 임직원 14명을 기소했다. 공정위와 사법기관이 동시에 움직인다는 건, 이 사건이 단순 행정제재로 끝날 사안이 아니라는 의미다.

나 같은 워킹우먼 입장에서는 이런 뉴스가 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밀가루는 라면, 빵, 과자, 국수 같은 생활식품의 출발점이다. 원가가 흔들리면 결국 소비자가 끝에서 부담한다. 기업들은 공급망 상단에서 가격을 정하고, 그 아래에서는 유통과 가공업체가 버티고, 마지막에는 장을 보는 사람이 체감한다. 그래서 담합은 멀리 있는 범죄가 아니다. 내 식탁 위로 조용히 내려앉는 생활 침해다.

지나고 보니 시장은 알아서 정화되지 않는다. 누군가 계속 감시하고, 적발하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손을 대야 한다. 이번 사건이 역대 최대 과징금으로 끝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로 가격과 거래 관행이 정상화되는지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공정한 경쟁은 선언이 아니라 관리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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